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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달성도동서원 - 달성여행 - 도동서원 은행나무

by current-events-today 2025.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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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도동서원,달성 도동서원 (대구),달성 도동서원 날짜도장

 

 

도동서원은 여러 번 왔지만 이렇게 노란색 물든 은행나무는 첫 보기에 은행나무를 일주해 멋진 모습을 보았다.

 

수령이 약 440년인 도동서원 은행나무는 나무 주위가 879cm, 높이가 25m에 달하며 한범당 김굉필 선생님의 외종손인 고제한강정구 선생님이 도동서원 중건 기념에 식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440여년의 시간을 보여주는 은행나무 줄기는 튼튼하고 확고하고 힘이 있고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나무의 줄기를 지지해 주는 지지대도 어딘가에 보인다 이런 노력이 있어 400년 세월을 이겨냈을 것이다.

 

잎이 떨어진 고목의 단단한 나무줄기에 이끼류도 자란다.

 

땅으로 구부러진 나무 줄기는 다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떨어진 은행나무 잎은 노란 융단을 펼치고 있다.

 

햇빛을 받고 빛나는 은행나무 잎

 

은행나무 잎을 떨고 있는 나뭇가지도 모두 아름다울 뿐이다.

 

은행나무의 경치를 마친 뒤 도동서원을 둘러봤다. 조선시대 유학자인 김굉필 선생님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려고 1604년에 세운 서원에서 '도동'의 의미는 '성리학의 길이 동쪽으로 왔다'는 의미라고 한다. 186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철퇴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로 한국 5대 서원으로 선정된다.

 

2019년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서원 입구에는 김굉필 신드비

 

도동서원 사적비

 

보물 제350호 「도동서원 강당 사당부장원」의 표지석이 보인다.

 

도동서원 정문인 스월에 들어간다.

 

수월 입구가 내려다 보이는 은행나무

 

오른쪽에 있는 비안 옆에 자라는 또 다른 은행나무

 

비각의 울타리와 노란 은행나무의 색미가 잘 어울린다.

 

유생들의 휴게소와 강독공간이었던 수월의 전경.

 

태극문양의 문이 눈에 띈다.

 

안으로 들어가 바라본 스월. 스월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스월에 올라 바라볼 전망은 볼 수 없었다.

 

수월은 지나면 환주문과 중정당, 내삼문, 사당이 일렬로 위치하고 있다.

 

'내 마음의 주인을 부른다'는 의미를 가진 환주문은 문 높이가 낮고 신선한 유생은 머리를 내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환초문에는 문지대신 문을 고정하는 싹 같은 정지석이 보인다. 정지석 하나에도 미적 가치가 느껴진다.

 

환주문은 오랜 세월을 지켜온 만큼 구멍이 몇 개 나오고 있다.

 

환순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중정당과 마주한다. 중정당은 그늘과 양이 조화되는 중용 상태를 의미한다. 이 표시는 도동서원에만 있어, 이를 보는 사람들이 여기를 향해 예를 모았다고 한다.

 

중정당에는 서원의 편액이 내벽면과 전채의 두 곳에 걸려 있다.

 

상급생이 기거하는 동재 거인재는 서재 거의 재에 비해 마루마루나 창문이 있는 것으로도 선배의 지위를 느낄 수 있다.

 

서재 대부분

 

강당 정면 기단에는 여의주와 물고기를 씹고 있는 영혜리 4개가 새겨져 있다.

 

다람쥐 모양의 동물이 장식되어 있지만,이 다람쥐 모양은 오른쪽 계단에는 위쪽을 보고 있고, 왼쪽 계단에는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고 "동입서출"이라고 출입하는 방향을 알린다고 한다. 이런 기발한 발상인가!

 

또한 중정당의 기단은 모양과 색, 질감이 다른 돌이 한치의 오차 없이 서로 맞물려 위치하고 있다.

 

정원에 나오는 돌길의 중앙에는 상쾌한 눈을 보내고 있는 거북이의 모양도 보인다. 여기에 들어오는 악령을 쓰러뜨린다는 각오가 눈앞에 담겨 있다.

 

도동서원의 담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중정당의 넓은 나무 바닥

 

중정당 뒤에는 김굉필 선생의 위패와 한강정구 선생의 위패를 모시던 사당이 있다. 아래에는 학문 공간, 위에는 사당을 둔 조선 중기 '전학 후묘'의 전형적인 배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내 삼문 앞에도 거북이 모양의 돌이 보인다.

 

사는 문이 베풀어져 들어갈 수 없고, 조금 열린 문 사이에 들여다 봤다.

 

이 사진은 김굉필 선생님의 묘소에 다녀와 담 밖에서 찍은 사당의 모습이다.

 

사원을 내려다본 중정당의 뒷모습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제사장을 준비하고 제기를 보관하는 전사청을 지나 서원 밖으로 나왔다.

 

서원을 나와서 서원 뒷산에 있는 김국필 선생님의 묘소를 들렀다. 서원의 후산을 다니상이라고 하지만, 대는 머리에 있다는 의미로, 너는 공자를 의미하고 공자를 머리에 당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서원에서 400m가량 오르면 한방당 묘소 주변의 묘역 안내도가 보인다.

 

김굉필 선생님의 무덤

 

선생님의 무덤 뒤에 부인의 무덤이 보인다.

 

따뜻한 햇살이 나온 곳에 출가한 1인당 세 번째 딸의 무덤이 있어 의심이 있었지만, 어머니가 병원에 ​​있을 때 극단적으로 정신적으로 조심하고 어머니가 사후에 다가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묘소를 여기로 결정했다는 안내가 있었다.

 

묘소에서 내리는 길에서는 도동서원의 아름다운 울타리의 모습을 더욱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층을 이루고 쌓은 울타리의 자연과 색감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담 앞에 보이는 멋진 은행나무의 풍경도 담아 본다.

 

도동서원을 나와 1.3km 떨어진 달럼재를 들렀다.

 

정자에 오르면

 

도동서원과 낙동강을 바라볼 수 있지만, 잎을 위해 도동서원의 전경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유감이었다.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든 도동서원 은행나무 버킷리스트를 성공시켰다. 400년간 건강하게 자란 은행나무도 고맙고, 한때 도동서원에 왔을 때 문화해설사를 통해 알려진 도동서원의 숨은 흔적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김굉필 선생님의 묘소도 방문한 것도 도동서원을 찾아온 의미를 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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